코로나19로 인해 서울 자취 생활을 조금 일찍 청산하고, 대전에 내려올 준비를 하면서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대전에 내려가서는 반드시 셰어하우스를 구해 살 거야.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가장 큰 것은 5년(코로나로 인해 마지막 한 학기는 본가에 돌아와 있었으니, 사실상 4년 반이지만)의 자취 생활로 인해 몸이 너무 많이 무너져 있었다는 점이다. 혼자 생활을 챙긴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들고, 생활공간을 유지하는 에너지는 규모의 경제를 따른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 힘든 일이었다. 밥을 대강 챙겨먹게 되고, 좁은 공간은 깨끗하게 유지하기도, 적당한 양의 활동량을 챙기기에도 너무 어려웠다.

거기다 두 차례의 대전 인턴으로 내가 생각보다 이미 구축해놓은 인적 자원에 많이 의존하고, 외로움을 많이 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 대전에 내려왔을 때는 정말이지 하루 종일 입 한 번 뻥끗을 안 해서 서러움에 울면서 잠든 적도 있으니까. 이제는 랩 사람들과 적당히 친해졌으니 조금 낫지만, 이곳에서 학부를 나오고 몇 년을 지낸 사람들에 비해서는 안정적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확실히 적다. 그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집에 돌아왔을 때 함께 시간을 보낼 - 같이 뭔가 특별하게 하는 게 아니더라도 - 누군가가 필요했다.

마지막 이유는, 작년 겨울방학 인턴 때 같이 지낸 팔공하우스의 기억이 강하게 남은 탓이다. 네 명이 함께 살면서 가사 분담을 하고, 집에서 게임이니 티알피지니 하는 이런저런 컨텐츠를 함께 즐기고, 서로 합의한 규칙에 따라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배려하고, 모여서 밥을 먹고… 쑤를 제외하면 다 와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식구’라는 연결관계가 주는 안정감은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팔공하우스에는 고양이도 있었다! 미로시로 보고싶어) 셰어하우스의 이상향과 같은 경험을 한 나는 서울로 돌아와서도 셰어하우스 신봉자가 되었고, 앞으로 시작될 내 대전 생활에도 이런 안정감이 오기를 바랐다.

이와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던 참에, 마침 앞서 말한 팔공하우스가 구성원들의 졸업 등등으로 인해 해체되면서 지금 나의 룸메인 쑤가 따로 나와 살게 되었고,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았다. 쑤는 요리를 좋아하는데, 손이 크고 위가 작아서 잘 먹어 줄 사람을 항상 찾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쑤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착한 룸메이기도 했고. 그래서 쑤와 딜을 했다. 나랑 살자. 내가 (서울 자취방 보증금 빼서) 집 구해오면 너가 와서 밥을 하자. 설거지는 내가 할게.

최선을 다해 좋은 환경을 만들자

쑤는 한 술 더 떴다. “이렇게 된 거 아파트에서 살자. 넓고 좋은 집에서 살면서 삶의 질을 높이자!”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투룸보다 어쩌면 아파트가 더 구하기 쉬울 수도 있고, 삶의 질이 유의미하게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신 아파트는 학생 두 명이 살기에는 여러모로 부담스럽기에 같이 살 사람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집을 보러 다니고, 같이 살자고 제안했던 다른 사람이 거절해서 헤매던 차에 쑤가 베카한테 물어볼까? 하고 제안했다. 베카와는 딱 한 번 만나본 사이이기는 했지만, 급하기도 하고 안 될 거 없지 싶어서 그러자고 했다. 그리고 쑤는 대뜸 베카에게 전화를 걸어서, “베카, 나랑 해수랑 같이 아파트에서 살래?” 라고 물었고, 그렇게 물어보면 어떡하냐고 따질 틈도 없이 베카는 좋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다하우스가 됐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셋이 되어 있어서. 계획된 건 하나도 없었지만, 아무렴 나쁠 것 없다.

같이 살기로 결정하고 나서는 삼자대면을 하면서 집에서 함께 살 때 지킬 것들에 대한 규칙을 정했다. 손님을 들일 때는 어떻게 할 건지, 방은 어떻게 운용하는지, 누구는 아침에 씻고 누구는 밤에 씻는지. 금액은 어떻게 나눌 것인지 등등. 뭔들 마냥 상관없다는 무난무난사람인 나는 이 이야기가 오래 걸릴 줄 몰랐는데, 베카는 생각보다 단호한 사람이었고 쑤도 의외로 원하는 게 명확한 사람이어서 조정이 조금 오래 걸렸다. 그렇지만 실제로 들어가기 전에 내용에 대한 합의를 미리 볼 수 있었던 건 그 나름대로 도움이 되는 경험이었다.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베카와 나는 두 번째로 얼굴을 보고선 말을 놓았다.

마침 나는 입학 전까지 쑤의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소기업청년대상 전세대금 대출 혜택을 볼 수 있었다. 대출을 받는답신고 서류를 준비하고, 집을 보러 다니고, 그 와중에 회사에서 일도 하고 졸업 준비도 하느라고 정신없어서 혼쭐이 나기는 했다. 그렇지만 우여곡절 끝에 학교에서도 가깝고 우리가 찾는 여러 조건에도 맞는 집을 딱 하나 찾았다. (물론 이 집 하나만 보고 계약했다가 본가에서 엄청나게 혼나긴 했다) 후다닥 계약을 진행하고, 살던 투룸도 처분하고 이사 준비를 했다.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집주인은 부동산에서 계약을 위해 만나자마자 냅다 탈세를 제안하질 않나, 도배를 해준다 만다 관련해서 실랑이도 있었고, 계약을 도와주기 위해 내려오신 부모님과 집주인 사이에 껴서 나는 또 한 차례 진을 뺐다. 어른의 세상이란 이렇게 힘든 거구나, 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돌고 돌아 우리 집이 생겼고,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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