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과정이 절반 지나갔다. 반쯤은 핑계, 반쯤은 장난, 반쯤은 진심 도합 150%의 마음으로 스스로를 늘 ‘아기 연구자’ 라고 칭하고 다녔는데, 진짜 아기 연구자들이 더 들어오면서 더 이상 그렇게만은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_ㅠ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해 동안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연구를 대하는 자세도 많이 달라졌고, 그 전에는 해보지 못한 연구 경험도 생기고,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보다 명확해지기도 했다.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기록을 해 놓고자 석사 1년차에 대한 소회를 남겨 보려고 한다.

연구가 본업이 된다는 것

입학하자마자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드디어 이것이 내 ‘본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 학부생으로서 다양한 연구 활동이나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따로 시간을 내서 하는, Extracurricular 활동이었다는 점이다. 학(부)생으로서 내가 해야 하는 가장 큰 일은 공부를 하고, 수업을 듣고 제때 과제를 내고 시험을 치고… 이런 것들이었다. 그에 반해 연구는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일이었다. 수업을 듣고 남는 시간에, 다른 일들을 할 시간을 쪼개서. 그렇게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연구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늘 뒷전으로 미뤄져 있는 시간들이 있었다.

내개 ‘대학원에 온다’는 건, 이렇게 뒷전, 잘 해봐야 2순위였던 것이 전면으로 넘어온다는 뜻이었다. 다른 모든 것이 연구하는 나를 방해하는 distractor가 되고, 본업은 제법 명확하게 ‘좋은 연구를 하는 것’이라고 정의되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해방감이 생각보다 엄청났다. 이제는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을 해도 된다는 안정감. 모두가 대학원에 대해서 이렇게 느끼는 것만은 아니겠지만, 나에게는 확실히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알게 됐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연구를 좋아한다고!

3개월동안은 헤맸는데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첫 학기부터 제법 빡세게 연구 활동에 들어갔다. Potential research topic이야 들어오기 전에도 프로포절 발표니 뭐니 이것저것 해야 하는 만큼 준비가 아예 안 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런데 장정우 교수님과 김주호 교수님 두 분과 함께하는 첫 번째 joint meeting에 들어가자마자 장정우 교수님께서 대뜸 묵직한 질문을 던지셨다.

그래서 석사 논문은 이 주제로 쓰는 거예요?

솔직히?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2년이 짧다고 말들 하지만 (그리고 지금 절반이 지난 채 보면, 정말 짧기는 하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여전히 석사 논문이란 게 까마득한 미래처럼 느껴졌으니 더더욱 놀라운 질문이었다.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당황했던 기억은 아직도 나는 걸 보면 어, 어어, 네, 뭐 이런 대답을 했겠지. 그냥 당장 하고 싶은 연구 주제예요! 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너무 큰 commitment였달까?

물론 이제는 안다. 연구 turnaround라는 건… 약간 허상같은 거라는 걸. 6개월~1년 간격으로 논문을 뽑아내거나, 한 번에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굴리는 (되돌아보니 senior researcher 들이었는데… 왜 나랑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했지?) 사람들을 KIXLAB 인턴 경험을 하면서 너무 많이 봐 왔던 게 큰 몫을 했다. 물론 모든 대학원생이 다 그렇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무의식적으로 ‘여기에 내가 온 이상, 나도 같은 수준으로 연구를 해야 한다’ 라거나, 할 수 있다거나, 뭐 그런 착각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지금 시작하는 이 연구가 바로 내 석사 연구가 될 거라는 결심을 할 준비는 안 되어 있었다. 이게 제 석사 연구예요, 라고 말하면서도 솔직히 말하면 이걸 빨리 끝내 버리고, 그 다음에 본격적인 연구를 하면 그게 석사 연구가 될까? 같은 생각을 했다.

실패하는 법을 배우기

물론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처음으로 9월에 낸 CHI 논문은 내가 스스로 굉장히 자랑스러워했던 것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아픈 리젝을 받았다. 리젝이야 모든 연구자들이 경험하면서 성장하는 거라지만, 실패가 1/n인 것과 1/1인 것과는 다르다. 심지어 2021년에는 우리 연구실이 너무 좋은 성과를 이뤄낸 바람에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

8-9월 CHI 시즌이 되면서

가르치는 일에 대해

어쩌다 보니 1학기, 2학기 두 학기 연달아 수업 조교를 했다. 그냥 조교를 한 것도 아니고 제법 조교가 고생하기로 악명이 높은(ㅎㅎ) 우리 교수님의 수업을. CS374, CS473 수업을 연달아 조교하고, 운 좋게 두 번 모두 우수 조교 상까지 받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전산학부에서, 두 번째는 CELT에서. 기분이… 정말 좋았다!

조교 일에 대해서는 다른 소회를 한 번 더 남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학생들의 잘못은 꽤 많은 경우에 인도를 잘못 해 준 사람들의 잘못이라는 생각을 했다. 잘 안 듣고 이상한 걸 하는 학생들에 대해 답답할 수 있다. 그런 마음은 이해가 가면서도, 한 번도 안 해본 걸 어떻게 잘 하나? 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학부생 때 한 번도 안 해본 걸 하면서도 왜 이렇게 못 하냐는 류의 질타만 들어왔어서 그런가. 진심으로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는 학생들을 내가 멱살 잡고 끌고 갈 필요는 없겠지만, 수업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학생들에 대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은 그 학생들을 대할 때 똑같이 진심으로 대해 주는 정도라고 생각을 한다. 굳이 선해해 줄 필요가 없다지만, 굳이 의도를 나쁘게 해석할 것도 없는 거니까. 이런 마음가짐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